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정(士正). 종실 봉래군(蓬萊君) 이형신(李炯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야(李壄)이다. 아버지는 이기창(李箕昌)이며 어머니는 홍호(洪灝)의 딸이다. 이시건(李蓍建)의 아우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을 거쳐 1762년(영조 38)에 정언으로 있으면서 패초(牌招: 임금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제도)를 어기고, 대론(臺論: 언관인 대관들의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하여 남해 연안으로 정배(定配)되었다.
헌납을 역임하고 1772년(영조 48)에 집의가 되어 공의(公義: 공론에 의한 논의나 결정)를 어긴 전 판서 정존겸(鄭存謙)과 전 참의 이명식(李命植)의 관직을 빼앗고 4대문 밖으로 내쫓을 것을 계청하였다.
또 감찰(監察)의 직책에 대하여, 옛날부터 이는 전중어사(殿中御史)로서 그 책임이 무거우니 당하관 중에서도 문관은 승문원(承文院)에서, 무관은 선천(宣薦: 무과에 급제한 자 가운데 선전관의 후보로 추천될 만한 인물)에서 풍모가 있는 자를 뽑아야 과거시험의 감독과 조반(朝班) 감찰을 잘 할 수 있다고 주청하였다. 부교리·사간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1773년(영조 49)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