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부교리, 대사간,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정원(正源)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 사망 연도1700년(숙종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지평|수찬|부교리
  • 출생 연도1643년(인조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부교리, 대사간,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정원(正源). 사성(司成) 이창정(李昌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심(李襑)이다. 아버지는 이정징(李鼎徵)이며, 어머니는 윤창언(尹昌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수찬(修撰)·지평을 역임하고, 1678년(숙종 4)에 부교리가 되었다. 이 때 대신(大臣)들이 그 역할을 다 못하자 이에 상소하기를, 기치를 세우고 예(禮)를 논하여 죄지은 역도(逆徒)를 용서하여도 대신이 능히 간쟁하지 못하고 있다 하였다.

또 채하징(蔡河徵)이 신구(伸救: 죄없는 사람을 사실대로 변명하여 구제함.)하다가 변방에 정배된 데 대해 다시는 이에 대한 소(疏)가 있으면 역률(逆律)로 다스리겠다고 왕이 말하자, 역률은 너무 지나치다고 상언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왕의 잘못을 연명으로 차자(箚子)하여 파직되었다가 환수되었고, 1691년(숙종 17)에 대사간으로서 원자(元子)의 호(號)를 정할 때에 반교문(頒敎文: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이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 글)을 소홀하게 지은 남용익(南龍翼)을 논핵하기도 하였다.

이어 승지가 되어서는 윤휴(尹鑴)의 천장(遷葬: 장지를 옮김.)에 휼전(恤典: 국가에 재민을 구제하는 혜택)을 청하여 장수(葬需)와 역군(役軍)이 내리기도 하였다. 1692년(숙종 18)에 다시 대사간에 제수되었고, 이어 강원도 관찰사와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