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동래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97년(숙종 23)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어서는 고성(高城)의 굶주린 형제가 서로 먹으려 하다가 함께 굶어 죽은 사건으로 추고당하기도 하였다. 이어 승지·동지부사(冬至府使)·형조참판을 거쳐, 다시 승지·동래부사가 되었다.
이 때 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변방 수령이 싫어 관직 교체를 꾀하는 습속이 가악스럽다 하여 특명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1706년(숙종 32)에 대사간·경상감사를 거쳐 1713년(숙종 39)에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 때 숙종 재위 40주년을 맞아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존호(尊號)의 예를 마련하고자 하자, 왕에게 이를 받아 들이지 말도록 상언(上言)하였다. 1716년(숙종 42)에 도승지가 되었고, 이듬해 사직이 되었다.
이 때 연명 상소로 세자의 위호(位號) 제정을 독촉하여,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당후일록(堂后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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