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지원(止源), 호는 우천(牛泉). 충주 출신.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8년 성수침(成守琛)·서경덕(徐敬德) 등과 현량과(賢良科)에 별천(別薦)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성균관에서 학업에 전념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가 유배되자 소두(疏頭)로서 성균관의 유생 150여명과 함께 궁궐에 나아가 항소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윤언직(尹彦直)·홍순복(洪舜福)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
1521년 평해(平海)로 유배되었다가 10년 만인 1531년에 예산으로 이배, 같은 해 8월 그 곳에서 죽었다. 1605년(선조 38)에 설원(雪寃)되었고, 1708년(숙종 34) 대흥현(大興縣) 우정사(牛井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우천유고(牛泉遺稿)』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