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평숙(平叔). 할아버지는 이중번(李重蕃)이고, 아버지는 청릉군(靑陵君) 이모(李模)이다. 어머니는 조정의(趙正誼)의 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홍현보(洪鉉輔)의 딸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1756년(영조 32) 정언이 되어 북관(北關)에 부임하여, 추문을 일으킨 대사성 김한철(金漢喆)의 개정(改正)과 재변(災變)을 아뢰지 않은 삼사(三司) 대신들의 체직을 상소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조정에 시끄러움을 야기시킨다고 하여 폐서인(廢庶人)에 처해졌다가 영의정 이천보(李天輔)의 간청에 의하여 풀려났다.
이어 헌납·서장관·보덕·수찬을 거쳐 승지가 되었고,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769년(영조 45)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는데, 이 때 임금이 아버지 이모(李模)의 집을 사서 육상궁(毓祥宮)을 만들었다. 그 뒤 동의금, 공조·형조·호조의 참판을 거쳐, 대사헌·사직을 역임하였다.
1772년(영조 48)에 아들 이택수(李澤遂)가 송라찰방(松羅察訪)에 제수되었는데, 이 때 정사(呈辭: 관리가 사직이나 청가를 관부에 제출하는 일)를 잘못하자, “아비가 아들을 잘못 가르친 죄”라 하고 파직하였다.
1773년(영조 49) 봉조하(奉朝賀)로서 지영례(祗迎禮: 왕의 환궁을 맞이 하는 예식)에 참석한 뒤 선마(宣麻: 几杖을 내릴 때 함께 껴서 주는 글)를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