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어제(成宗御製) 시제(詩題) 중에 돈피이암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피견(披肩)·휘항(揮項)·호이엄(胡耳掩)·난이(煖耳)·풍차(風遮)·삼산건(三山巾)·만선두리(滿縇頭里)·말액아암(抹額兒掩) 등 여러 가지 명칭이 보여서 난모계 쓰개는 이엄에서 나누어져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3년 정월조에 있는 사치금지절목에 서인의 남자나 부녀자들이 초피나 청서피로 이엄을 만드는 것은 금하되 여인이 서피로 만드는 것은 금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엄은 남녀·귀천의 구별없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재료는 모피와 짙은 색의 비단 등으로 하였으며, 형태는 말기의 유물에 의하면 머리 부분과 이마·볼·어깨까지 덮을 수 있고 눈과 코 부분만 내놓을 수 있으며, 끈이 달려 있어 맬 수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