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日本書紀)』게이타이기(繼體紀) 8년(514)조에 나오는 지명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6세기 초에 반파(伴跛), 즉 고령의 대가야는 이열비와 마수비(麻須比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三嘉)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 : 위치 미상)ㆍ추봉(推封 :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에까지 뻗치고 사졸과 병기를 모아서 신라를 핍박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慈仁 : 옛이름 奴斯火)으로 보는 설과 경상남도 의령(宜寧 : 옛이름 獐含)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는데, 고령대가야가 대구(大邱)의 큰 신라세력을 넘어 경산 자인방면까지 진출해서 축성하였다고 믿기는 어려우므로 일단 자인설(慈仁說)은 부정된다.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에 의령이 노함촌(奴含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령의 옛 이름인 장함(獐含)의 장은 훈독하여 ‘노루’라고 읽었을 것이므로, 이열비는 의령에 비정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