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지명.
내용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慈仁 : 옛이름 奴斯火)으로 보는 설과 경상남도 의령(宜寧 : 옛이름 獐含)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는데, 고령대가야가 대구(大邱)의 큰 신라세력을 넘어 경산 자인방면까지 진출해서 축성하였다고 믿기는 어려우므로 일단 자인설(慈仁說)은 부정된다.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에 의령이 노함촌(奴含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령의 옛 이름인 장함(獐含)의 장은 훈독하여 ‘노루’라고 읽었을 것이므로, 이열비는 의령에 비정될 만하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남산신성비문(南山新城碑文)』
- 『일본서기(日本書紀)』
- 『가야연맹사(加耶聯盟史)』(김태식, 일조각, 1994)
- 『남원월산리고적군발굴조사보고(南原月山里古墳群發掘調査報告)』(전영래,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83)
- 『가야흥망사(任那興亡史)』(末松保和, 吉川弘文館, 1949)
- 「5세기 후반 대가야(大加耶)의 발전에 대한 연구(硏究)」(김태식, 『한국사론(韓國史論)』12,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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