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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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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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지명.
내용

『일본서기(日本書紀)』게이타이기(繼體紀) 8년(514)조에 나오는 지명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6세기 초에 반파(伴跛), 즉 고령의 대가야는 이열비와 마수비(麻須比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三嘉)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 : 위치 미상)ㆍ추봉(推封 :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에까지 뻗치고 사졸과 병기를 모아서 신라를 핍박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慈仁 : 옛이름 奴斯火)으로 보는 설과 경상남도 의령(宜寧 : 옛이름 獐含)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는데, 고령대가야가 대구(大邱)의 큰 신라세력을 넘어 경산 자인방면까지 진출해서 축성하였다고 믿기는 어려우므로 일단 자인설(慈仁說)은 부정된다.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에 의령이 노함촌(奴含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령의 옛 이름인 장함(獐含)의 장은 훈독하여 ‘노루’라고 읽었을 것이므로, 이열비는 의령에 비정될 만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남산신성비문(南山新城碑文)』
『일본서기(日本書紀)』
『가야연맹사(加耶聯盟史)』(김태식, 일조각, 1994)
『남원월산리고적군발굴조사보고(南原月山里古墳群發掘調査報告)』(전영래,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83)
『가야흥망사(任那興亡史)』(末松保和, 吉川弘文館, 1949)
「5세기 후반 대가야(大加耶)의 발전에 대한 연구(硏究)」(김태식, 『한국사론(韓國史論)』12,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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