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기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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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가야연맹의 소국.
이칭
이칭
탁국(啄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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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야연맹의 소국.
내용

성립시기에 대하여서는 알 수 없지만 5세기말∼6세기 초에 고령의 대가야가 추봉(推封 :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에 비정)까지 세력을 뻗칠 때 후기가야연맹으로 소속된 듯하다.

그 뒤 522년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 이후 대가야왕에 의하여 주변 소국들에 분산 배치된 신라왕녀(아마도 신라왕실의 친족인 이찬 비조부의 누이동생) 수행인들의 변복(變服) 문제로 가야연맹의 내부에 분쟁이 생겼다.

신라가 이를 계기로 창원ㆍ영산방면을 공략하자, 그 와중에 무력의 열세를 느낀 탁기탄국의 함파한기(函跛旱岐)가 신라측에 내응함으로써 쉽사리 멸망하였다. 후기가야소국 중 가장 먼저 신라에게 병합되었으며, 멸망연대는 529년을 전후한 2∼3년간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신공기(神功紀)와 계체기(繼體紀)ㆍ흠명기(欽明紀) 등에 탁국(啄國) 또는 탁기탄국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그 위치에 대하여서는 종전까지 대체로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지역으로 비정하고 있었으나, 최근 출토된 유물의 성격이나 문헌사료상의 정황증거로 보아 경산은 적합하지 않으며, 영산ㆍ밀양방면의 한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참고문헌

『일본서기(日本書紀)』
『가야연맹사(加耶聯盟史)』(김태식, 일조각, 1994)
「6세기 전반 가야남부제국(加耶南部諸國)의 소멸과정고찰」(김태식,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1, 1988)
「日本書紀朝鮮地名攷」(鮎貝房之進, 『雜攷』 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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