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양근군수, 가평목민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양근군수(楊根郡守)로 재임시에는 치적이 으뜸으로 평가되어 표리(表裏: 왕이 내린 안팎의 옷감)가 하사되었고 재임(再任)하였다. 1627년(인조 5) 철원부에 나가 있을 때 정묘호란이 일어났는데, 양서원수(兩西元帥)가 철원부 관서에 들어오자, 이들과 함께 융졸(戎卒: 군졸을 훈련시킴)·척후(斥候: 적의 정세를 살핌)·병식(兵食: 병사들의 식량을 공급함)을 도모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호가하였으며, 청병(淸兵)이 물러간 뒤 경기 지방의 민심이 흉흉하자 조정에서도 의전이 맑으면서 깨끗하고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 하여 가평의 목민관을 명하였다.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되고 완선군(完善君)으로 봉하여졌다. 70세에 치사하고 봉조하(奉朝賀)에 들었으며, 만년에 서호(西湖)에서 살다가 80세 노인으로서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 『기언별집(記言別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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