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책. 목판본. 1911년 아들 동손(東孫)과 후배 이승덕(李承德) 등이 간행하였다. 권말에 친구 성기운(成璣運)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있다.
권1에 시 5수, 서(書) 87편, 권2에 잡저 84조목, 설(說) 1편, 제발(題跋) 2편, 잠(箴) 1편, 권3에 묘지 8편, 행장·유사 각 1편, 권4에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書)에는 스승인 임헌회(任憲晦)에게 보낸 두 편의 「상전재선생(上全齋先生)」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1874년(고종 11)에 보낸 글은 『대학』의 문목(問目)으로 되어 있다.
교우인 전우(田愚)에게 보낸 12편의 「여전자명(與田子明)」에는 1884년 단행된 복제개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글과, 1910년 망국의 현실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결별을 알린 편지가 실려 있다.
그 밖에도 그와 교유한 박성양(朴性陽)·이상수(李象秀)·송병순(宋秉珣) 등 당대의 유수한 인물 40여 명에게 기울어가는 조국을 걱정하는 편지가 다수 실려 있다. 유학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사고체계를 지닌 지식인의 외래문물에 대한 가치관과 무분별한 외래 사조의 유입으로 파생된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잡저의 「자수헌만록(自守軒漫錄)」은 저자가 일생 동안 벼슬에 초연한 채 힘써온 학문 연구와 의리의 실천이 결집된 것이다. 청렴결백한 생활신조로부터 우국충정, 중국과 우리 나라의 선현 중에서 국가가 위태로울 때 의롭게 처신한 사람들의 선행·격언 등이 다수 실려 있다.
「절필시(絶筆詩)」·「포경고사잠(抱經枯死箴)」는 그가 망국적인 현실을 개탄하여 한 달 가량 단식하다가 순절하기 직전에 쓴 글이다. 「자수헌만록」 등과 함께 충성스러운 행동의 사상적 편린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그와 박세화(朴世和)가 단식 끝에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전우가 의로운 결단을 슬퍼하는 「박의당조이재경술문변절립자진후(朴毅堂趙履齋庚戌聞變絶粒自盡後)」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