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경상남도 밀양 출신. 아버지는 휘재(徽載)이다. 1945년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여 1948년 졸업한 뒤 연희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편입, 1953년 졸업하였다. 1955년 연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하여 1957년 〈이조시대의 도첩제도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이후 서울시립농업대학·덕성여자대학·한양대학교·연세대학교 강사로 출강하였다. 1961년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연구와 한국사학계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일찍부터 조선전기사회경제사 연구에 정진하여, 1962년「조선초 화폐제의 변천」을 발표한 이래 「승인호패고(僧人號牌考)」·「의항고(蟻項考)」·「안흥량대책(安興梁對策)에서의 태안조거(泰安漕渠) 및 안민창문제(安民倉問題)」·「이조인의 화폐관」·「선초의 둔전제에 대하여」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0년 연세대학교에서 「조선전기 사회경제사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편, 기초자료 정리에 힘써, 『고려사색인』·『고구려사연구 II』·『조선후기 역산가보·색인(朝鮮後期 曆算家譜·索引)』·『경제육전집록(經濟六典輯錄)』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색인집과 사료집을 발간하였다.
학계와 사회 각 분야의 학술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그동안 한국사학회 편집간사, 한국사연구회 대표간사, 한국사연구회 평의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으며, 연세대학교 재직시에 인문과학연구소장·문과대학장·국학연구원장 등의 보직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