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정랑, 구성부사, 평양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여주목사 이희원(李希愿), 원주목사 안대진(安大進)의 파직 등을 주장하였으나 위인이 용렬하고 거칠어 간쟁의 관직에는 합당하지 못하다는 사신의 평을 들었다. 그 뒤 호조정랑, 장령·전적을 역임하면서 삼명일(三名日: 와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및 동지날 등의 세 명절)에 진상(進上)하는 방물을 감해주도록 요청하였다.
선공감정(繕工監正), 헌납을 거쳐 1602년에는 평안도구황어사(平安道救荒御史)로 파견되어 여러 고을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이어 구성부사(龜城府使)로 제수되어 목민 업무를 담당하다가 몇 개월 후 사섬시정(司贍寺正)에 제수되어 중앙 관직에 복귀하였다.
그 뒤 1604년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재직시 정성을 다해 백성을 다스린다는 평안감사 김신원(金信元)의 추천으로 이듬해 공조정랑에 제수되었고, 그 뒤 성균관직강 등을 역임하였다. 『명종실록』 편찬 당시 춘추관편수관을 지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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