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집의 본관은 고성(固城)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대변을 맛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3년상을 치르면서 날마다 죽만 먹고 슬프게 곡(哭)하였다. 1720년(숙종 46) 군내 유림들의 천거로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며, 1725년(영조 1)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묘소에는 1727년(영조 3)에 세운 비가 남아 있는데, 비문은 이조참판 이재(李縡)가 짓고, 좌부승지지제교(左副承旨知製敎) 이중협(李重協)이 글씨를 썼으며, 제액(題額)은 전라감사 김조택(金祖澤)의 글씨이다.
장방형의 기단 위에 화강암의 비신이 있고, 그 위에 이수(螭首)가 있다. 특히 이수 부분은 여러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미술사적 측면에서 주목해볼 만 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