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경성판윤, 호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8년 다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전적을 거쳐 감찰이 되었고, 이어 예조·병조·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32년 경성판윤(鏡城判尹)으로 나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호조·형조좌랑을 역임하고 다시 보성군수로 나가 곧 병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경상도사에 제수되었다.
1635년 대동찰방(大同察訪)·형조정랑에 제수되었지만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통례원상례가 되었으나 3개월만에 병으로 체직되어 여주에 우거하였다. 그 해 12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음을 듣고 호가를 위해 곧 갔으나 도중에 청병(淸兵)을 만나 좌절되고, 지평에서 의병을 모은 전 판서 이현영(李顯英)과 함께 춘천·양양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637년 이후 장령·예조정랑·군기시정·봉상시정 등과 네 번의 사간의 임명, 두 번의 홍문관응교의 제수, 승문원판교·사복시정·집의 등의 임명에 모두 병을 핑계로 거절하고 여주에서 머물다가 죽었다.
사신(史臣)은, 그가 국가에 변란이 있을 때만 일시 출사했다가 곧 향리로 돌아갔고, 광해군 때의 폐모사건 이후 출사하지 않은 영남의 김령(金坽), 호남의 신천익(愼天翊)과 더불어 처음부터 벼슬에 뜻이 없었다고 평가하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고산유고(孤山遺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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