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좌승지, 공조참의,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이(士以)
수석(水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8년(선조 21)
사망 연도
1654년(효종 5)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동부승지|좌승지|공조참의|영흥부사
관련 사건
인조반정|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좌승지, 공조참의, 영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사이(士以), 호는 수석(水石). 이제신(李濟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자(正字) 이기준(李耆俊)이고, 아버지는 현령 이중기(李重基)이며, 어머니는 임색(任穡)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대 정쟁으로 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류(士類)들이 제거되자, 그의 아버지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 고기잡이로 소일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가 되고,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필선·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34년에 인천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선행자를 표창하는 표문(表門)을 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독전어사(督戰御史)가 되어 풍설을 무릅쓰고 방어에 힘썼다. 난이 끝난 뒤 호종(扈從)의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그뒤 동부승지·좌승지·공조참의·영흥부사 등을 역임하고 1654년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송자대전(宋子大全)』
『남계집(南溪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