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동찰방, 인주부사, 평해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군기시첨정으로 있을 때에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북쪽 오랑캐인 번호(藩胡)를 친다는 구실로 군사를 거느리고 함경도에 들어오자, 접반사가 되어 임기응변으로 명나라 군사가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그 뒤 남원부사·대동찰방·인주부사·평해군수·능주목사(綾州牧使)를 거쳐, 1632년 내섬시정(內贍寺正)이 되고 이어서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역임한 뒤 예빈시정(禮賓寺正)이 되었다. 곧이어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가 되었고 울산부사로 나갔다가 사감이 있는 어사(御史)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9년 뒤에 해주목사로 복직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으로 사임하였다. 다시 종묘영(宗廟令)·상례(相禮)·안동부사·병조참의·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명재유고(明齋遺稿)』
- 『용인이씨대동보(龍仁李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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