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인동부사,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1년 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지제교를 겸임하였고, 1673년 이조정랑에 올랐다. 이어 의정부사인·세자시강원보덕을 지낸 뒤, 홍문관응교에 재임시 유배당한 김수흥(金壽興)·남이성(南二星) 등이 속히 환원되어야 함을 왕에게 요구하였으며, 대왕대비의 복제문제로 남인과 왕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곧 사간이 되었으나 종래의 예론복제문제(禮論服制問題)와 관련, 남인 일파가 일세유종(一世儒宗)인 송시열(宋時烈)을 비난 공격하는 여론을 계속 일으키고 있다 하여 그들에게 죄줄 것을 청한 계문(啓文)을 올렸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
이 때 도승지 김석주(金錫胄), 좌승지 안진(安縝) 등 승정원이 모두 왕명을 철회할 것을 극간하였으나, 파당을 옹호하는 태도를 용서할 수 없다 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순천부사·인동부사·첨지중추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