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연(聖淵). 이만기(李萬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태령(李泰岭)이고, 아버지는 이현양(李顯陽)이며, 어머니는 홍우칭(洪禹偁)의 딸이다.
1747년(영조 23) 사마시에 뽑혀 진사가 되고, 175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정언 등을 거쳐 1762년 헌납이 되었다. 이 때 노론계 중신들의 비행을 지적, 탄핵하여 호조판서 김상복(金相福), 함경도관찰사 조명정(趙明鼎), 평양서윤 정극순(鄭克淳) 등을 일시에 파직시켰다.
그 뒤 사간을 거쳐 1767년 영광군수로 있을 때, 전라도 세곡을 실은 조운선(漕運船)에 서책과 화분을 함께 실어 운송한 죄목으로 위도(蝟島)에 귀양가 1년 만에 풀려 나왔다. 1771년 승지로 특진되었고 이후 대사간, 강계부사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