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이조좌랑, 공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개석헌(介石軒)
  • 계장(季章)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1694년(숙종 2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은진현감|사복시주부|이조좌랑|공조좌랑
  • 출생 연도1621년(광해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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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이조좌랑, 공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안(子安). 아버지는 좌참찬 이홍연(李弘淵)이며, 어머니는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52년에 그가 태학의 재임(齋任)으로 있을 때 새로이 급제한 자들이 성묘(聖廟)를 배알하려 하자 이들 가운데 선현(先賢)을 모독한 자가 있다 하여 적극, 반대하다가 정거(停擧: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일시 빼앗음)되었다.

그 뒤 두문불출, 낭천(狼川)에 은둔하던 중 벼슬길에 오르는 기회를 얻어 후릉참봉(厚陵參奉)·의금부도사·종부시직장을 거쳐, 사옹원주부가 되었다. 그 뒤 은진현감·사복시주부, 공조·이조의 좌랑을 지냈다.

1668년(현종 9) 금성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반숙마 한 필이 하사되었다. 얼마 뒤 호조정랑이 되고, 양천군수로 다시 외직 생활을 하였다. 이어 한성부의 윤·서윤을 지낸 뒤 면천군수를 거쳐, 남양부사를 끝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그는 성품이 중후 순실하여 자기자신을 감추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의 경지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으나, 다만 송시열은 그의 사람됨을 알고 도(道)에 들어갈 만한 인물로 아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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