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근대,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김규진이 쓴 『이소남서첩(李少南書帖)』[1916] 서문에는 “이희수가 5세에 붓을 잡아 9세에 이름을 떨치고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 각체를 알았으며 난죽(蘭竹)을 잘 그렸다.”라는 내용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체를 따랐던 조광진(曺匡振)의 아들 조석신(曺錫臣)으로부터 서법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이희수는 서예뿐 아니라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현전하는 서화 작품이 100여 점이 넘는다.
이희수의 문하에서, 글씨로 이름이 났던 홍락섭(洪樂燮)과 심지황(沈之潢), 효제문자도(孝弟文字圖)로 유명했던 이규황(李圭璜, 1868~1926)과 황승규(黃昇奎, 1886~1962)가 배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유용태, 『강원의 미 제1집』(강원일보사, 1993)
논문
- 강영주, 「관동의 시서화를 담다: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강원지역 《관동팔경 효제문자도 병풍》 고찰」(『한국민화』 19, 한국민화학회, 2023)
- 김진돈, 「이소남 서첩(李少南 書帖)」(『전라금석문연구』 13, 전라금석문연구회, 2009)
- 이원복, 「소남 이희수의 회화: 산수병과 묵난죽병을 중심으로」(『미술자료』 54, 국립중앙박물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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