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

회화
인물
조선 후기~근대,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
이칭
상옥(尙玉)
초명
춘수(春秀)
호적명
유황(裕璜)
소남(少南), 경지(景止)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6년
사망 연도
1909년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평양
주요 작품
이소남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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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희수는 조선 후기~근대에 활동한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김규진의 외삼촌이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고, 그림에서는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배출했고, 강원 화단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정의
조선 후기~근대, 『이소남서첩』을 남기고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초명은 이춘수(李春秀)이며, 호적명은 이유황(李裕璜)이다. 자는 상옥(尙玉), 호는 소남(少南) · 경지(景止)이다.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祥原)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외삼촌이자 스승이다.

주요 활동

상원에서 서화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887년(고종 24)에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면서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규진이 쓴 『이소남서첩(李少南書帖)』[1916] 서문에는 “이희수가 5세에 붓을 잡아 9세에 이름을 떨치고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 각체를 알았으며 난죽(蘭竹)을 잘 그렸다.”라는 내용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체를 따랐던 조광진(曺匡振)의 아들 조석신(曺錫臣)으로부터 서법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이희수는 서예뿐 아니라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현전하는 서화 작품이 100여 점이 넘는다.

이희수의 문하에서, 글씨로 이름이 났던 홍락섭(洪樂燮)과 심지황(沈之潢), 효제문자도(孝弟文字圖)로 유명했던 이규황(李圭璜, 18681926)과 황승규(黃昇奎, 18861962)가 배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유용태, 『강원의 미 제1집』(강원일보사, 1993)

논문

강영주, 「관동의 시서화를 담다: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강원지역 《관동팔경 효제문자도 병풍》 고찰」(『한국민화』 19, 한국민화학회, 2023)
김진돈, 「이소남 서첩(李少南 書帖)」(『전라금석문연구』 13, 전라금석문연구회, 2009)
이원복, 「소남 이희수의 회화: 산수병과 묵난죽병을 중심으로」(『미술자료』 54, 국립중앙박물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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