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초명은 이춘수(李春秀)이며, 호적명은 이유황(李裕璜)이다. 자는 상옥(尙玉), 호는 소남(少南) · 경지(景止)이다.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祥原) 출신으로, 근대기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외삼촌이자 스승이다.
상원에서 서화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887년(고종 24)에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면서 강원 화단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규진이 쓴 『이소남서첩(李少南書帖)』[1916] 서문에는 “이희수가 5세에 붓을 잡아 9세에 이름을 떨치고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 각체를 알았으며 난죽(蘭竹)을 잘 그렸다.”라는 내용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체를 따랐던 조광진(曺匡振)의 아들 조석신(曺錫臣)으로부터 서법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이희수는 서예뿐 아니라 산수, 사군자, 괴석, 모란, 정물 등 19세기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제를 두루 섭렵했다. 현전하는 서화 작품이 100여 점이 넘는다.
이희수의 문하에서, 글씨로 이름이 났던 홍락섭(洪樂燮)과 심지황(沈之潢), 효제문자도(孝弟文字圖)로 유명했던 이규황(李圭璜, 18681926)과 황승규(黃昇奎, 18861962)가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