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홍(尹濟弘), 서유구(徐有榘), 김정희(金正喜), 홍현주(洪顯周)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청나라 학자인 옹방강(翁方綱) · 옹수곤(翁樹崑) 부자, 주학년(朱鶴年) 등과도 서화로 교류하였으며, 19세기를 풍미한 금석학 연구 및 금석첩 발행에 동참하였다.
평생 시 · 서 · 화에 걸쳐 지극한 관심을 표방하였다. 자신의 문집에 "글씨와 그림을 공부하느라 몽당붓이 상자에 가득하였는데 붓으로 무덤을 만들고자 하였다.", "금석을 고증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여 경전을 헤아리고자 하였다."라며 서화에 침잠했던 심정을 설명하였다. 회화 작품으로는 홍현주, 옹방강 등의 작품이 합장된 개인 소장 「산수도(山水圖)」, 간송미술관 소장 「한강낙안도(寒江落雁圖)」 등이 전한다. 이조묵은 오세창(吳世昌)이 '조선에서 으뜸[甲於一國]'이라고 칭송할 만큼 다량의 서화를 소유했던 수장가였다. 특히 중국의 골동품에 대한 애착이 심하여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저술로 문집인 『육교집(六橋集)』, 『육교고략(六橋藁略)』, 『오운고략(烏雲稿略)』이 있다. 또한 신라와 고려의 비문 중 일부를 탁본하여 모은 『나려임랑고(羅麗琳瑯攷)』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