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묵 ()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
이칭
강다(絳茶)
육교(六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2년
사망 연도
1840년
본관
전주(全州)
주요 저서
육교집, 육교고략, 오운고략, 나려임랑고
주요 작품
한강낙안도, 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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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조묵은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이다. 일생 동안 김정희, 옹방강과 같은 조선과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에 침잠하였다.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도 전념하였으며, 오세창으로부터 수장가로서 ‘조선의 으뜸’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강다(絳茶), 호는 육교(六橋)이다. 할아버지는 우의정 이창의(李昌誼),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병정(李秉鼎)이다. 이조묵의 가문은 소론 계열로, 대대로 문사에 뛰어났고, 판서, 정승을 역임한 인물을 다수 배출하였다. 그러나 이조묵 자신은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시문과 서화에 전념하며 은둔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주요 활동

윤제홍(尹濟弘), 서유구(徐有榘), 김정희(金正喜), 홍현주(洪顯周)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청나라 학자인 옹방강(翁方綱) · 옹수곤(翁樹崑) 부자, 주학년(朱鶴年) 등과도 서화로 교류하였으며, 19세기를 풍미한 금석학 연구 및 금석첩 발행에 동참하였다.

평생 시 · 서 · 화에 걸쳐 지극한 관심을 표방하였다. 자신의 문집에 "글씨와 그림을 공부하느라 몽당붓이 상자에 가득하였는데 붓으로 무덤을 만들고자 하였다.", "금석을 고증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여 경전을 헤아리고자 하였다."라며 서화에 침잠했던 심정을 설명하였다. 회화 작품으로는 홍현주, 옹방강 등의 작품이 합장된 개인 소장 「산수도(山水圖)」, 간송미술관 소장 「한강낙안도(寒江落雁圖)」 등이 전한다. 이조묵은 오세창(吳世昌)이 '조선에서 으뜸[甲於一國]'이라고 칭송할 만큼 다량의 서화를 소유했던 수장가였다. 특히 중국의 골동품에 대한 애착이 심하여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 문집인 『육교집(六橋集)』, 『육교고략(六橋藁略)』, 『오운고략(烏雲稿略)』이 있다. 또한 신라와 고려의 비문 중 일부를 탁본하여 모은 『나려임랑고(羅麗琳瑯攷)』를 남겼다.

참고문헌

원전

『육교고략(六橋稿略)』
『오운고략(烏雲稿略)』
『나려임랑고(羅麗琳瑯攷)』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이현일, 「육교 이조묵 시 연구」(『동양학』 5,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4)
황정연,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默)의 서화완상과 금석취미」(『문헌과 해석』 27, 문헌과 해석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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