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이조좌랑,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대교를 거쳐 1620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으며, 이어 정언·이조좌랑·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이이첨의 친아들과 다름없을 정도로 심복이었으며, 유생 때부터 폐모를 주장하는 등 흉악함이 극에 달했다는 이유로 언관의 탄핵을 받아 멀리 유배되었다.
1628년(인조 6) 반역을 도모한 유효립(柳孝立)의 옥사에 관련되어 경원(慶源)으로 다시 유배되어 위리안치(圍離安置)되었다. 이듬해 후금(後金)과 통하여 역모를 꾀한 양경홍(梁景鴻) 사건에 관련되어 추국을 받은 뒤 영암(靈巖)으로 유배되었으며, 1631년 홍산(鴻山)으로 옮겨졌다가 1633년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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