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직초(直初), 호는 운정(雲汀). 판서 임명필(任明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주목사 임윤(任尹)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임국로(任國老)이며, 어머니는 한원(韓垣)의 딸이다.
사마시를 거쳐 158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1591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를 하였다.
이듬해 수찬이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매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그 뒤 병조정랑이 되었으나, 의주로 피난하는 선조를 호종하지 않은 죄로 한때 파직되었다. 1597년 부교리가 되어 선유어사(宣諭御史)로 한산도에 다녀왔다.
이듬해 동부승지·대사간·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599년 대사간이 되었을 때 김신국(金藎國)·남이공(南以恭) 등이 권력을 전단하자 임취정(任就正)·민몽룡(閔夢龍)과 함께 이들을 탄핵하여 관직을 삭탈하였다.
1600년 부제학·대사성이 되었으며, 다음해 병으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죽었다. 어려서부터 시를 잘 써서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