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판윤,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군우(君遇)
  • 시호문정(文靖)
  • 죽애(竹崖)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591년(선조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510년(중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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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판윤,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군우(君遇), 호는 죽애(竹崖). 임장손(任長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제(任濟)이고, 아버지는 참봉 임명필(任明弼)이며, 어머니는 윤훤(尹萱)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어 사관(史官)을 겸하였다. 1536년 수찬으로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해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였다.

그 뒤 부교리·집의·전한을 거쳐, 1543년 직제학이 되었고, 이듬해 병조참의가 되었다가 승지로 전보되었다. 명종 때 대사간·이조참의·대사헌·병조참의를 역임하였고, 그뒤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예조참의가 되었다.

이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한성부좌윤·우윤을 거쳐, 공조판서로 임명되었으나 탄핵을 받아 부임하지 않았다. 1560년(명종 15) 예문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동지춘추관사·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가 1567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세 번 과거에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고, 60년을 조정에 있으면서도 시종 권세를 지닌 간신이나 사화(士禍)에 굴복하거나 따라붙는 일이 없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택당집(澤堂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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