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영지(永之)
  • 시호효정(孝貞)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나주(羅州)
  • 사망 연도1879년(고종 1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90년(정조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종록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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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영지(永之). 임양호(林養浩)의 증손으로, 임유진(林有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5년(순조 25)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홍문관 등의 언관직을 거쳐서 정3품으로 승진하여 장악원정으로 근무하던 중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당상관이 되었다.

1841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으며, 두 차례 대사간을 더 지낸 뒤 승지로 임명되어 1850년(철종 1) 헌종의 산릉역 및 제례에서의 노고로 종2품으로 승진하였다.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된 뒤 1859년 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뒤 10여차례에 걸쳐 대사헌을 지내는 등 법사(法司)의 장관으로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1866년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에 제수되었고, 1869년 예조판서를 지냈다.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그 대부분의 기간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보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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