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영지(永之). 임양호(林養浩)의 증손으로, 임유진(林有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홍문관 등의 언관직을 거쳐서 정3품으로 승진하여 장악원정으로 근무하던 중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당상관이 되었다.
1841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으며, 두 차례 대사간을 더 지낸 뒤 승지로 임명되어 1850년(철종 1) 헌종의 산릉역 및 제례에서의 노고로 종2품으로 승진하였다.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된 뒤 1859년 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뒤 10여차례에 걸쳐 대사헌을 지내는 등 법사(法司)의 장관으로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1866년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에 제수되었고, 1869년 예조판서를 지냈다.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그 대부분의 기간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보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