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후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이칭
  • 시호문충(文忠)
  • 이칭임원애(任元敳)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묘청의 난
  • 본관정안(定安)
  • 사망 연도1156년(의종 1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089년(선종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용운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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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정안(定安). 초명은 임원애(任元敳). 예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임의(任懿)의 둘째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명문출신으로 당대의 문벌귀족가인 윤관(尹瓘)·이식(李軾)·이위(李瑋)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고, 자기의 딸은 인종에게 납비하여 외척이 됨으로써 빠른 출세를 하였다.

1142년(인종 20) 문하시랑평장사로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하여 총재(冢宰)의 자리에 오르고, 이어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다시 선충안사좌리동덕공신(宣忠安社佐理同德功臣)에 수태위(守太尉)·정안공(定安公)의 작호까지 겸대하여 왕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또한, 개경을 근거로 하는 귀족세력으로 묘청(妙淸)·정지상(鄭知常) 등 서경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수상에 재임하는 동안 인사행정이 공평했다는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

  • - 「고려시대의 정안임씨·철원최씨·공암허씨가문분석」(박용운, 『한국사논총』3,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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