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때, 녹사,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임유정은 대대로 과거급제를 했던 집안의 3형제 가운데에 둘째로 태어났다. 비상한 기억력과 시재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급제하고 늦게서 벼슬길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양계(兩界: 고려·조선 시대에 군사적으로 중시되던 동계(東界)와 서계(西界)를 아울러 이르던 말)에서 녹사(錄事: 고려 시대에, 각급 관아에 속하여 기록에 관련된 일을 맡아보던 하급 실무직 벼슬)로서 있다. 최전방의 외교와 민정에 참여했던 것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금성(지금의 나주)에서 외직을 거쳤던 것도 확인된다.
후대에 임유정을 ‘임좨주(林祭酒)’라 칭하고, 그가 지은 책의 이름에도 이러한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최종적으로 국자감의 좨주(祭酒: 국자감의 종삼품 벼슬)라는 벼슬을 지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증직(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일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임유정의 작품은 창조성이나 경학과는 거리가 먼 응구첩대(應口捷對: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함.)의 시작으로 시대성을 반영하였다. 그래서 시문에 경학정신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의 평론가로부터 외면당하였다고 평가된다.
임유정은 백가의(百家衣)체의 시를 잘 지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그의 문집이나 『동문선』에도 집구시(集句詩)만이 뽑혀 있고 순수하게 자신이 지은 시는 한편도 없다. 『동인시화』에서도 이 점에 대해 유방선(柳芳善)의 말을 빌어 임유정과 최집균(崔執鈞)이 집구(옛사람들이 지은 글귀를 모아서 새 시를 만듦. 또는 그 시)에 능하였는데, 어찌 스스로 지은 시가 한편도 세상에 전하여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없느냐고 반문한 뒤에 이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였다. 저작으로 『임좨주백가의시집(林祭酒百家衣詩集)』5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 『백가의집(白家衣集)』
- 『동인시화(東人詩話)』
- 「백가의집해제」(허흥식, 『계간서지학보』 제13집, 한국서지학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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