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때, 강원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송석(松石)
  • 익여(翼如)
  • 시호효정(孝靖)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임오군란
  • 본관금성(錦城)
  • 사망 연도1886년(고종 2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7년(순조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영민 (상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때, 강원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익여(翼如), 호는 송석(松石). 첨지중추부사 임기진(林箕鎭)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6년(헌종 12)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정언·교리·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냈다. 1863년(철종 14) 경상감사 김흥근(金興根)이 철종에게 무례를 범했는데도 언관들이 논핵하지 않았다고 하여 지평 임한수 등을 유배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864년(고종 1)에는 양주목사로 재임했을 때의 치적이 뛰어나 표창을 받았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군대를 이끌고 여현(礪峴)에 포진하였다.

1867년 선혜청에서 양주 대동에 상납분을 돈으로 바꿔 상납하도록 하고 독촉까지 했는데 임한수가 거행하지 않아 먼저 파직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고종은 양주는 능원(陵園)이 있는 곳이므로 스스로 응역(應役)하도록 하고, 임한수의 논죄는 그만두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때 또 경기 암행어사의 보고에 따라 포상되었다.

1868년에 대사간과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74년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는 일본과 서계(書啓)와 관련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대원군의 심복인 부산훈도 안동준(安東晙)을 조사하였다.

1875년 진하 겸 사은부사(進賀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의주부윤과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벌목하는 사실을 알아내어 조정에 보고하였다.

임오군란 후까지 강원도관찰사로 있다가 함경도관찰사로 전임되었다. 이때 청나라의 요청으로 토문강(土門江) 북안의 유민쇄환 조사, 혜산진 이설 등 변방 방비에 힘썼다. 함경도관찰사로 있으면서 함흥지방의 향권(鄕權) 다툼에 휘말려, 남병사 윤웅렬(尹雄烈)의 죄상을 보고한 일이 있었다.

조정에서 윤웅렬의 아들 윤치호(尹致昊)를 안무사(安撫使)로 파견하고 가도사(假都使)를 차하(差下)하는 등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자, 공무를 그만두고 직접 봉계(封啓)를 올리기 위해 잠행하다가 그 이유로 파직되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참고문헌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가오고략(嘉梧藁略)』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