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한(景閑)은 1299년 전라남도 고부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경한, 법호는 백운(白雲)이다. 1346년(충목왕 2) 왕명으로 기우(祈雨)의식을 주관한 것으로 추정되며, 장곡사(長谷寺) 금동여래좌상 조성을 주도하였다. 1351년(충정왕 3) 원으로 유학을 떠나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과 지공(指空, ?~1363)을 만났다. 1352년(공민왕 1) 귀국하여 개성의 남쪽의 성각사(性覺寺)와 보법사(報法寺)에서 수행하며 태고보우(太古普愚) 및 관료들과 교류하였다. 이듬해에는 불각사(佛覺寺)에서 『증도가(證道歌)』를 암송하다 깨달음을 얻었으며, 1354년에는 해주 안국사(安國寺)에서 지공에게 편지를 보냈고, 석옥청공이 입적하기 전 작성한 「사세송(辭世頌)」을 전해 받는 등 원에서 만났던 승려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1365년(공민왕 14) 공민왕의 명으로 해주 신광사(神光寺) 주지가 되었고, 1368년(공민왕 17)에는 흥성사(興聖寺)에 주석하였다. 1370년(공민왕 19)에는 왕명으로 광명사(廣明寺)에서 열린 공부선(功夫選)에 시관(試官)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경한은 성불산(成佛山)으로 들어가 『불조직지심체요절』를 짓고, 1374년 여주 취암사(鷲巖寺)에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과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있다.
현존하는 『직지』 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금속활자본 1건과 국내에서 발견된 목판본 3건이 있다. 이중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은 현전하는 금속활자본으로는 유일본이다. 1377년 경한의 제자 석찬(釋璨), 달잠(達湛), 비구니 묘덕(妙德)이 청주목 인근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1887년(고종 24) 초대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였던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가 수집하여 프랑스로 가지고 간 고서에 금속활자본 『직지』가 포함되었었고, 1901년 발간된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 보유판에 『직지』가 수록되었다. 이후 경매로 『직지』를 구입했던 알리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직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2001년 유네스코 주1에 등재되었다. 금속활자본은 1책으로 하권만 남아 있다. 표지에 묵서로 “直指 下”(직지 하)라고 적혀 있으며, 표제가 나오는 첫장은 결락된 채 2장부터 오침으로 선장하였다. 책말에 간기와 시주질이 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프랑스 국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속활자본 직지의 영인본을 간행하면서 천혜봉의 해제를 부록으로 함께 넣었다.
보물로 지정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은 1377년 흥덕사에서 인쇄한 금속활자본을 이듬해인 1378년(우왕 4) 6월 경한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鷲巖寺)에서 경한의 제자 법린(法璘) 등이 목판에 다시 새겨 인출한 것이다. 김계생(金繼生) 등의 시주를 받아 간행하였다. 판하본(板下本)의 글씨는 민암(民巖) · 선화(禪和) 등이 썼고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할 때 시주자였던 묘덕(妙德)도 참여하였다. 표지에는 묵서로 표제가 적혀 있다. 표제는 “佛祖直指心體要節”(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1378년 목판으로 중간할 때 이색이 지은 서문과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할 때 성사달이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고, 권하의 권말에는 경한의 발문, 시주질, 간기가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가 하권만 전하는 것에 비해 취암사본은 직지 전체가 남아 있고, 흥덕사에서 인쇄한 이듬해 흥덕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판하본을 마련한 것이어서 직지의 형태와 내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표지에는 “藥童”(약동)이라는 묵서가 있다. 이 묵서는 소장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약동은 일제강점기 해남 대흥사 주지를 역임한 취운혜오(翠雲慧悟, 1866~?)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장서인과 표지 안쪽의 묵서 기록 등을 보면, 18세기 완주 송광사에서 강사를 지낸 청파혜원(靑坡慧苑)이 이 책을 소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완주 송광사(松廣寺)의 청파혜원이 소장하던 책이 19세기 해남 대흥사(大興寺) 취운혜오에게 전달되며 전라도 지역에서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책 상하권에 성사달과 이색의 서문, 경한의 발문, 시주질과 간기를 모두 갖춘 완본으로는 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이 유일본이다.
취암사에서 인출한 목판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외에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있으나,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이색과 성사달의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금속활자본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보다 인쇄 시기가 늦은 후쇄본(後刷本)으로, 후대에도 직지가 인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서인으로 위창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소장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전라남도 영광 불갑사(佛甲寺) 팔상전에 봉안된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 복장 전적에서도 『직지』가 발견되었다. 불갑사 소장본은 고려시대 인쇄한 초인본으로 보고 있으나 앞뒤 표지, 서문, 권하 본문의 일부, 발문, 간기 등이 누락되어 있다.
『직지』는 경한이 원에서 유학할 때 석옥청공에게서 받은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바탕으로 여러 주2서에서 발췌하여 초록한 것을 덧붙이고 주석도 달아 상 · 하 2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직지의 원본인 석옥청공의 저술이 남아 있지 않아 『직지』의 원본과 경한이 증보한 부분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어떤 부분을 절요하고 어떤 부분을 증보할 것인가를 정한 것은 경한이므로, 직지는 경한의 선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처, 조사, 재가인, 기타 경론 등 145가(家)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등의 순서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 일치하여, 선종의 전통적인 전등사서를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경덕전등록』 간행 이후의 인물은 석옥청공이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경한이 추가로 보입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 7불, 서천 28대 조사, 중국의 역대 조사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는데, 각 선사와 관련된 일화나 주3, 게송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법안문익(法眼文益)이나 원오극근(圓悟克勤)처럼 2~3회에 걸쳐 중복되는 인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