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대사헌,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대사간으로 있을 때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의 수렴청정을 반대, 한 때 안주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온 뒤 이조참의·강원도관찰사·이조참판·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18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 판의금부사·세자시강원우빈객·좌참찬을 지낸 다음 우의정에 올랐으나 질병으로 거듭 사직을 청원, 허락되지 않다가 1823년 판중추부사로 전임된 뒤 관직을 떠났다. 퇴임 직전에 건의된 서얼(庶孼)을 위한 인재등용책은 간접적이나마 세도정치로 부패된 관계숙정(官界肅正: 관료들의 세계를 바로 잡음)의 한 방안이 되기도 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소박하여 권세와 이익을 좇는 데에 물들지 않았으며, 자손이 번성하여 세칭 ‘복인(福人)’이라 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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