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소(景昭). 임굉유(林宏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세집(林世諿)이고, 아버지는 승지 임상원(林象元)이며, 어머니는 심위(沈瑋)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9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홍문관수찬·함경도북평사·암행어사·이조참의·대사간 등을 지냈다.
1803년(순조 3) 대사간으로 있을 때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의 수렴청정을 반대, 한 때 안주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온 뒤 이조참의·강원도관찰사·이조참판·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18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 판의금부사·세자시강원우빈객·좌참찬을 지낸 다음 우의정에 올랐으나 질병으로 거듭 사직을 청원, 허락되지 않다가 1823년 판중추부사로 전임된 뒤 관직을 떠났다. 퇴임 직전에 건의된 서얼(庶孼)을 위한 인재등용책은 간접적이나마 세도정치로 부패된 관계숙정(官界肅正: 관료들의 세계를 바로 잡음)의 한 방안이 되기도 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소박하여 권세와 이익을 좇는 데에 물들지 않았으며, 자손이 번성하여 세칭 ‘복인(福人)’이라 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