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회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정랑,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직(公直)
  • 관해(觀海)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이괄의 난
  • 본관평택(平澤)
  • 사망 연도1624년(인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광주목사
  • 출생 연도1562년(명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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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정랑,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공직(公直), 호는 관해(觀海). 임만근(林萬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준(林畯)이고, 아버지는 증좌승지 임정수(林貞秀)이며, 어머니는 이진남(李震男)의 딸이다. 중부(仲父) 임길수(林吉秀)에게 입양되었다. 정철(鄭澈)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1년(광해군 3) 50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나 대북파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에게 모함을 당하여 곧 사직하였다. 1613년 다시 전적에 기용되었으나 이듬해 정인홍의 무함으로 임서(林㥠)·정기룡(鄭起龍)과 함께 왕의 친국을 받은 뒤 양산에 유배되고, 아들 임득붕(林得朋)은 곤양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대북파가 몰락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예조정랑에 복직되었으며, 군기시첨정을 거쳐 이조판서 겸 대제학 신흠(申欽)의 추천으로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남한산성의 수축을 독려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도성을 침범하므로 박영서(朴永緖)·마우현(馬佑賢)과 함께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다가 경안역(慶安驛)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일찍이 1582년(선조 15) 성균관에 입학한 뒤 생모 이씨, 생부와 양부의 상을 차례로 당하였으며, 1593년(선조 26) 양모 노씨(魯氏)의 상을 당하여 상을 치르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전라남도 나주의 정렬사(旌烈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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