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2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단체.
개설
설립목적
그러므로 수입이 항상 지출보다 부족하여 과거 30년 동안, 특히 최근 10년 동안 조선민족의 부력(富力)은 거의 파산상태에 빠지게 되어 조선인의 유일한 재산인 토지 10분의 6이나 외인(外人)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대로 가게 되면 조선인의 경제는 파멸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자활(自活)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동기에서 조직되었다.
기능과 역할
이와 같은 움직임에 호응하여 지방에서 지회(支會)가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진주자작회가 같은 12월에 발기인회를 개최한 뒤 다음해인 1923년 1월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에 김재홍(金在泓), 총무에 강달영(姜達永), 재무에 신현수(申鉉壽), 간사에 천석구(千錫九) 등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강연회 및 선전유인물 살포 등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2월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자작회가 창립되어 나만성(羅萬成)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소비조합부를 설치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달에 경상남도 의령에서도 자작회 발기총회가 개최되어 회장에 김기진(金基珍)을 선출하고 토산품 장려뿐만 아니라 금주금연운동도 전개하였다. 한편, 서울의 자작회도 판매부를 신설하여 조선물산을 다방면으로 주문,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한편 강연회도 개최하였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활동에 호응하여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가, 다음달인 2월에는 토산애용부인회(土産愛用婦人會)가 각각 서울에서 조직되었다. 그 결과 조선물산장려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抗日學生民族運動史硏究)』(정세현, 일지사, 1975)
-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조지훈, 한국문화사대계 1,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64)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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