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영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위원, 제2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7년(고종 24)
  • 출생지경상남도 진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창순 (북한연구소, 정치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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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위원, 제2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남도 진주 출생. 6세때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3·1운동때 농민과 청년의 선두에서 지도하다가 투옥되어 1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1921년 조선노동공제회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과 함께 중앙위원에 피선되었다. 1925년 4월에는 조선공산당 결성과 함께 당원으로 가입하였으며, 11월에 일어난 신의주사건으로 제1차조선공산당이 와해되자 1926년 초 제2차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강달영이 속한 당의 정치목표는 공산당의 영도하에 사회·민족 진영을 통합하여 국민당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강달영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만의 대회를 만주지방에서 소집하여 국민당을 조직하고, 그 본부를 해외에, 지부를 국내에 두고 공산당원을 이 조직체에 투입, 운영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을 구상하였다.

강달영은 순종의 인산을 기하여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는 6·10만세운동을 은밀히 주동적으로 진행하다가 계획이 탄로되어 제2차조선공산당은 와해되었다.

1926년 7월 서울본정(本町: 명동)에서 아이스크림·바나나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다니다가 체포되어 6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옥중에서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증세를 일으켜 1934년에 출옥하였으나 끝내 회복 하지 못하고 죽었다.

참고문헌

  • - 『한국공산주의운동사 1』(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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