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명천 출신. 1918년 3월 하바롭스크에서 개최된 조선혁명가대회에 참석하였다. 5월 한인 사회주의 정당 창당을 결의하는 데 참여하였다.
1919년 11월 이동휘(李東輝)가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한인사회당의 근거지가 상해로 이동하였다. 이에 1920년 1월 이르쿠츠크 러시아공산당 한인지부를 설립, 위원장이 되었다.
이 단체는 볼셰비키혁명후 시베리아 한인사회의 공산주의 조직 가운데 러시아공산당의 민족별 별동조직으로 공식화된 것으로, 이르쿠츠크 서부지방의 귀화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1920년 7월 이르쿠츠크 러시아공산당 한인지부를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시베리아혁명의 유력자 스미야스키를 고문으로 추대, 자신은 위원장이 되었다.1921년 봄 또 하나의 고려공산당 간판을 내걸어 전로한인공산당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러나 코민테른 본부에서 상해는 물론,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해체를 명하자 고려공산당은 해체되었다. 그 뒤 코민테른에서 국내에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게 하는 지령이 내려지자 국내 당조직을 위한 준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10월 일본과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총살되었다. 1964년 복권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