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2월 대한국민의회의 군정부장을 역임하였다. 이로보아 이르쿠츠크 한인집단의 지도적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1921년 3월 이르쿠츠크에서 조직된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의장), 갈난다라시 윌린의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6월부터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이 발생하기 전 약 4개월 동안 상해파(上海派)와 이르쿠츠크파는 자유시에 집결한 한인무장부대의 군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을 벌였는데 당시 이르쿠츠크파의 대표적 지략가는 김하석이었다.
김하석은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장 스미야스키를 배경으로 시베리아에 진출한 상해파 인물들을 체포, 투옥하는 데 민완을 발휘하였다.
자유시참변을 규탄하는 간도계(間島系) 11개 단체의 성토문에 의하면, 김하석이 간도계 한국독립군을 러시아 당국에 일본밀정으로 고발하였기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르는 러시아군대가 한국독립군에 총격을 가하게 되었다고 고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