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延安)과 그들의 군조직인 팔로군(八路軍)에서 우리 나라의 독립쟁취를 위하여 싸우던 김두봉(金枓奉)·최창익(崔昌益)·한빈(韓斌) 등은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한 바 있었다.
이들은 조국이 광복되자 북한으로 들어와 조직 속의 김무정(金武亭)·김창만(金昌滿)·이상조(李相朝)·박일우(朴一禹)·허정숙(許貞淑) 등 소장파 정예분자들을 공산당에 들여보내면서 1946년 2월 중순부터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리하여 2월 16일에 조선신민당을 정식으로 발당시켜 북한에서 조직을 끝낸 뒤, 이미 그해 2월 3일서울에 한빈 등을 파견하여 조직한 ‘경성특별위원회’를 그 해 7월 14일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개편하고, 위원장에 백남운(白南雲), 부위원장에 정노식(鄭魯湜)을 앉혔다.
남조선신민당은 조선인민당 및 조선공산당과 3당 합동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분파적으로 사회노동당 결성에 가담하게 됨으로써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좌익기회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북한에서는 이미 조선신민당의 전조직이 북로당으로 합당된 뒤여서, 원래 평양에 본부를 둔 조선신민당의 분신 조직에 불과한 남조선신민당이 남조선로동당(약칭: 남로당)으로 전원 합동하지 않고 분파적으로나마 사회로동당(社會勞動黨, 약칭: 사로당) 결성에 가담한 것은 북로당의 입장에 유리한 국면이었다.
남조선신민당은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자 이에 흡수, 통합되어 그 존재가 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