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탄케비치). 아버지는 함경도 경원 출신의 김두서이다. 아버지가 극동시베리아로 이주하였으며,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출생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혼인하였으나 1914년에 이혼하고 1915년부터 우랄 지방의 벌목장에서 통역으로 일하였다.
1917년 초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러시아공산당 전신)에 입당하였다가 1918년 4월 이동휘(李東輝)·김립(金立)·박애(朴愛)·오성묵(吳成默) 등이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동맹을 결성할 때 여기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김알렉산드라는 이동휘 등이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레닌집단과 관련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볼셰비키(赤派)였다.
백파(白派)에 붙잡혀 1918년 9월 처형되기 전에 극동볼셰비키당대회에 참가하여 하바로프스크시당 비서로 선출되었으며, 극동인민위원회(정부)의 외무위원장(외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러시아 볼셰비키당에서는 ‘인터내셔널리스트’들이라고 부른다.
현재도 하바로프스크의 마르크스가(街) 24번지에는 김 알렉산드라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1917∼1918년 이 건물에서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탄케비치)이 일하였다. 그는 볼셰비키당 시위원회 사무국원이며 하바로프스크시 소비에트 외무위원이기도 하였다. 1918년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