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0년과 1923년평양과 서울에서 각각 조직된 조선물산장려운동 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창립 총회에서 유성준(兪星濬) · 김철수(金喆壽) · 김윤수(金潤秀) · 김동혁(金東赫) · 최순탁(崔淳鐸) · 박붕서(朴鵬緖) · 김덕창(金德昌) · 최경호(崔敬鎬) · 고용환(高龍煥) 등 20인이 이사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25일에는 당시 경기도 참여관이었던 유성준을 이사장으로 선출하였다. 평양과 동래에 지방 조직을 두었으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청년회와 상인회(商人會) 등으로부터 활동을 지원받았다.
기능과 역할
그 이유는, 첫째 토산품의 가격이 급등해 기업과 상인은 큰 이익을 남겼으나, 서민들은 이에 반비례해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 때문이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적 산업 기반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사 민족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산대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더욱이 이 운동은 유산 계급을 옹호하고 무산자의 혁명적 의도를 약화시킬 뿐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후 활동 방향을 바꾸어 소비조합을 조직하고 조선물산 진열관을 설립하며 조선물산품평회를 개최하는 등의 새로운 사업을 계획했으나 실현시키지는 못하였다. 결국, 그런저런 이유로 활동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기관지 발간만은 활발히 이루어져 『산업계』 · 『자활』 · 『조선물산장려회보』 · 『장산(奬産)』 · 『실생활(實生活)』 등을 간행하였다. 1929년 정세권(鄭世權)의 특지로 소생하는 듯했으나, 1934년부터 재정난으로 다시 침체되었고, 일제의 경제적 탄압 정책이 강화되면서 1937년 전반기에 이르러 조선물산장려회는 총독부의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韓國資本主義成立史論)』(조기준, 대왕사, 1973)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2(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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