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광제청년단·광제대한청년단·조선독립광제청년단이라고도 한다.
1919년 6월 오동진(吳東振)이 윤하진(尹河振)·장덕진(張德振)·박태열(朴泰烈)·윤학승(尹學昇) 등과 함께 관전현(寬甸縣)에서 조직하였으며, 윤하범(尹河範)·백봉즙(白鳳楫) 등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말 오동진이 안병찬(安秉瓚)과 함께 청년 단체를 모아 조직한 대한청년단연합회의 세포 단체로 가입하였다. 이때 오동진은 적 기관 파괴, 친일주구 살해, 군자금 모금을 임무로 하는 별동대의 대장이 되었으며, 박태열·장덕진 등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대한청년단연합회와 대한독립단이 통합하여 광복군총영이 결성되었는데, 총영장(總營長)에 오동진, 부관·결사대장에 박태열 등이 임명되는 등 광제청년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구체적인 항일 투쟁은 독자적으로 이뤄지거나, 다른 독립운동 단체와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의 명의로 전개하였다. 평안북도 구성·선천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의주에서는 20만원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의주 청성진 순사주재소 습격 뿐만 아니라 여러 순사주재소와 헌병분파소(憲兵分派所)를 공격하여 일본 순사와 헌병을 사살하였으며, 또한 독립운동을 방해한 의주군 옥당면장을 총살하는 등 친일주구를 응징하기도 하였다.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의 조선 방문을 기회로, 광복군총영은 조선의 독립 의지를 표방하기 위해 국내 각지에 행동대를 파견하였는데, 광제청년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활약하였다.
결사대 제2지대는 박태열의 지휘로 평양경찰서와 평양부청에 폭탄을 던졌으며, 제3대에 소속된 이학필(李學弼)은 선천군청에, 정인복(鄭仁福)은 신의주역에, 임용일(林龍日)은 선천경찰서에 각각 폭탄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