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81년(고종 18)에 화폐주조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1881년 7월 신사유람단이 귀국하여 시찰 결과를 국왕에게 복명한 이후 국왕 이하 정부내 소장 개화세력들에 의하여 정부기구의 개편이 추진되어,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의 12사가 7사로 개편되고 각 사의 명칭과 업무가 조정될 때 7사의 하나로 설치되었다.
사무(司務)를 관장하는 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와 실무를 담당하는 부경리사(副經理事)를 두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였으나, 대원군이 물러난 뒤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이 재건, 확충되어 통리아문과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으로 복설(復設)되었다.
같은 해 12월 이것이 각각 통리교섭통사무아문과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편되었을 때 감공사는 통리군국사무아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때 독판(督辦) · 협판(協辦) · 참의(參議) · 주사를 두었다.
1884년 10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사대당 중심으로 다시 정부기구가 개편되고 이어 국왕이 환궁하자, 같은달 21일 정부는 통리군국사무아문을 의정부에 합체시켰는데, 이때 감공사도 함께 폐지되었으며, 그 업무는 의정부내 관련기구로 이관된 것 같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개화정책』(신용하,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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