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12월 정부는 종래의 의정부·육조(六曹)와는 별도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司)를 두었다.
1881년 7월 신사유람단이 귀국하여 시찰 결과를 국왕에게 복명한 이후 국왕 이하 정부내 소장 개화세력들에 의하여 정부기구의 개편이 추진되어,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의 12사가 7사로 개편되고 각 사의 명칭과 업무가 조정될 때 7사의 하나로 설치되었다.
사무(司務)를 관장하는 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와 실무를 담당하는 부경리사(副經理事)를 두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였으나, 대원군이 물러난 뒤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이 재건, 확충되어 통리아문과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으로 복설(復設)되었다.
같은 해 12월 이것이 각각 통리교섭통사무아문과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편되었을 때 감공사는 통리군국사무아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때 독판(督辦)·협판(協辦)·참의(參議)·주사를 두었다.
1884년 10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사대당 중심으로 다시 정부기구가 개편되고 이어 국왕이 환궁하자, 같은달 21일 정부는 통리군국사무아문을 의정부에 합체시켰는데, 이때 감공사도 함께 폐지되었으며, 그 업무는 의정부내 관련기구로 이관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