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공사

  • 역사
  • 제도
  • 개항기
1881년(고종 18)에 화폐주조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제도/관청
  • 상급 기관통리군국사무아문
  • 설치 시기1881년
  • 폐지 시기1884년 10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진갑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4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881년(고종 18)에 화폐주조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1880년 12월 정부는 종래의 의정부 · 육조(六曹)와는 별도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司)를 두었다.

1881년 7월 신사유람단이 귀국하여 시찰 결과를 국왕에게 복명한 이후 국왕 이하 정부내 소장 개화세력들에 의하여 정부기구의 개편이 추진되어,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의 12사가 7사로 개편되고 각 사의 명칭과 업무가 조정될 때 7사의 하나로 설치되었다.

사무(司務)를 관장하는 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와 실무를 담당하는 부경리사(副經理事)를 두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였으나, 대원군이 물러난 뒤 같은 해 11월 통리기무아문이 재건, 확충되어 통리아문과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으로 복설(復設)되었다.

같은 해 12월 이것이 각각 통리교섭통사무아문과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편되었을 때 감공사는 통리군국사무아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때 독판(督辦) · 협판(協辦) · 참의(參議) · 주사를 두었다.

1884년 10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사대당 중심으로 다시 정부기구가 개편되고 이어 국왕이 환궁하자, 같은달 21일 정부는 통리군국사무아문을 의정부에 합체시켰는데, 이때 감공사도 함께 폐지되었으며, 그 업무는 의정부내 관련기구로 이관된 것 같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개화정책』(신용하,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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