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광인국(廣印局)이라고도 한다. 정부가 개화정책을 추진할 때인 1880년대초에 서적을 출판하여 이익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여러 명이 합자하여 설립하였다.
납활자〔鉛活字〕로 된 한글 자모와 한자 자모를 갖추고, 판화(版畫)도 인쇄할 수 있었는데, 납활자는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1885년(고종 22)에 정부는 지난해 갑신정변 때 박문국(博文局)의 인쇄시설이 훼손됨에 따라 간행이 중단된 『한성순보』를 이 출판사의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속간하려고 시도하였다.
비록,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이 일은 이 출판사가 정기간행물인 신문까지도 인쇄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광인사에서 출판한 것으로 알려진 서적으로는 1884년에 간행한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註合壁)』, 1885년에 간행한 안종수(安宗洙)의 『농정신편(農政新編)』과 책명을 알 수 없는 농서(農書), 1889년에 간행한 강위(姜瑋)의 시문집인 『고환당수초(古歡堂收草)』가 있다.
1894년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여러 민간 인쇄사가 설립되고 있으나, 이 출판사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1890년대초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