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2월 5일 이도(李道)·박영자(朴英子)·최영아(崔永牙)·이숙(李淑) 등 중류 이상 부인 50여명이 남의 나라에 빚지지 말고 스스로 살림을 충실히 하자는 뜻 아래 조직하였다.
가정부인, 창덕궁 나인(內人), 사회활동여성 등이 중심이 되어 발기하였으며, 회장에 72세의 심정택(沈貞澤)을 선출하였다.
취지문의 내용은 ‘거미 개미 가마귀도 제 살 경륜을 스스로 하는데 우리 조선사람은 의복 살림이 모두 남의 것이다. 이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 나라꼴이야 어떻든 여자들은 사치로운 옷을 입고 있다. 우리가 나라 일으킬 생산능력은 없으나 토산물을 애용하고 절약하여 민족과 내 가정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활동으로는 ‘내살림 내것으로’, ‘자작자급’, ‘토산애용에 대한 여자의 책임’ 등의 강연회를 개최하여 부녀자를 각성시켰으며, 토산애용을 실천시키고자 유한책임조합인 토산애용부인상회를 설립, 1924년 5월에 개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