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8년(세종 30)의 화약무기 대개량 때 제조된 것으로 당시에 가장 큰 포(砲)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고,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장군화통의 구조는, 앞에는 발사물인 대전(大箭)을 장진하는 취(觜)가 있는데, 길이 1척 7촌(52.1㎝), 안지름 3촌 2푼 3리(9.9㎝), 바깥지름 13.8㎝(겉둘레의 길이인데 바깥지름으로 환산하였음.)이다. 다음에는 길이 3촌7푼7리(11.5㎝)의 격목통(激木筒)이 있다.
이것은 약통 속의 화약이 폭발할 때 폭발력을 최대로 하여 발사물을 발사하기 위한 격목을 박는 곳인데, 앞쪽의 안지름은 취의 안지름과 같은 3촌 2푼 3리(9.9㎝), 그리고 뒤쪽(약통쪽)의 안지름은 약통의 안지름과 같은 2촌 8푼 6리(8.8㎝)로 앞쪽 안지름보다 뒤쪽의 안지름이 5푼7리(1.7㎝) 정도 작게 되어 있다.
즉, 취 쪽에서 약통 쪽으로 갈수록 안지름이 좁게 되어 있어 이곳에 지름 9.7∼9.8㎜짜리 둥근 통나무를 격목박는 쇠망치인 철추로 박는다. 격목통 뒤쪽에는 화약을 넣는 약통이 있는데, 안지름은 격목통의 뒤쪽과 같은 2촌8푼6리(8. 8㎝)이며, 길이는 7촌 8푼 8리(24.2㎝)이다.
약통의 뒷부분은 막혀 있고 두께는 1촌 5푼 5리(4.8㎝)이다. 장군화통 전체의 길이는 2척 8촌 6푼 5리(87.8㎝)이며, 무게는 104근 10냥이다.
취와 격목통에 있는 마디는 모두 8개이며, 취의 중앙과 격목통 위에는 문고리 같은 타원의 큰 고리 2개가 붙어 있어 이곳에 긴 통나무를 끼워 네 사람이 총통을 들고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장군총통에 대전을 넣고 쏠 때의 사정거리는 1,300여보(步)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