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순 ()

현대문학
인물
해방 이후 『한국설화문학연구』, 『한국문학사』, 『한국수필문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1년
사망 연도
1996년
본관
울진(蔚珍)
출생지
간도 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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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설화문학연구』, 『한국문학사』, 『한국수필문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개설

본관은 울진(蔚珍). 호는 성산(城山). 간도 용정(龍井) 출생. 아버지 장송창(張松昌)과 어머니 백안라(白安羅) 사이의 기독교 가정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용정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194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 공주사범대학 전임강사에 취임하여 대구신학교·부산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3년 연희대학교에 교수로 취임하였다. 1960년 4·19혁명 때 교수단 시위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 학교 재단과의 마찰로 연세대학교를 사임하였다.

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교수로 취임하여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한국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강의하고 연구하였다.

24년간 봉직하였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고전소설 구비문학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설화문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가 크다. 『국문학통론』(1960)·『한국설화문학연구』(1970)·『한국문학사』(1976)·『한국수필문학사』(1977)·『한국문학의 연원과 현장』(1986) 등 20여 권의 학술저서를 남겼다.

처음부터 서민의 정취와 애환이 담긴 고전문학에 관심을 보여 「계녀가사시론(械女歌辭試論)」을 필두로 「이춘풍전연구」·「흥부전연구」 등을 발표하여 작품의 소재 원천을 해명하고 작품에 담긴 한국인의 고유정서를 찾아 음미하였다.

1960년에 출간된 『국문학통론』에서는 국문학의 개념과 범주를 새롭게 규정하고 장르 삼분법에 의하여 국문학의 체계를 수립하는 등 서구의 문예이론을 섭렵하여 문헌고증이 중심이었던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후 설화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서울대학교에 구비문학과 설화문학의 강좌를 개설하고 구비문학 현지 조사를 학과 행사로 실시하여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1970년에 출간된 『한국설화문학연구』는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서 설화의 본질에서부터 주요 설화유형의 전승 실상과 의미를 해명하고 설화가 고전소설·현대소설 등 국문학의 다른 갈래들과 어떤 교점을 가졌는가를 밝힌 연구로서 설화문학연구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삼국유사』·『조선읍지』 등 문헌에 산재한 설화를 분류 정리한 업적은 한국 설화연구의 초석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노작으로 평가된다. 1971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구비문학개설』을 출간하여 구비문학을 체계화하여 국문학의 독자적 영역으로 격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국문학의 비교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야래자전설」과 일본의 「삼륜산전설」을 비교 연구하고 「일동장유가」와 일본의 「가부가요」를 비교하는 등 한·일 문학의 비교연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976년 간행한 『한국문학사』는 종전의 국문시가사 중심의 문학사의 영역을 한문학·구비문학·현대문학까지 확장하여 역사적으로 정리한 저서이다.

또한 당시까지 학문적 관심을 끌지 못했던 한문 수필 자료를 정리하여 『한국수필문학사』를 저술하였으며 국문학과 관련된 현장을 답사하여 주요 작품의 배경이나 작가의 고향에 얽힌 전승 자료를 조사하고 작품과 결부시켜 해설한 『국문학의 연원과 현장』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한국민족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한국의 여속』(1969)·『한국풍속지』(1972)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저들은 말년에 주요 논저를 모아 간행한 『성산장덕순선생저작집』 전 10권(1995)에 정리되었다. 국어국문학회 창립회원으로 부산지회장 및 이사를 역임하였고, 1970년 한국구비문학회를 창립하고 회장이 되어 학회를 이끌었으며, 같은 해 한국문화인류학회의 이사로 피선되고, 1971년 전국민속종합조사에 참여하여 전라남도의 구비문학을 조사하였다.

1973년에는 세계동양학자대회에 참여하였고, 1973년에는 일본에서 개최한 제29차 조선학대회에 초빙되어 주제 발표를 하는 등 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도남학회 이사장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심사위원 중앙문화대상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학술원회원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소탈하였으며 불의를 증오하고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제자들을 사랑하였다.

정병욱(鄭炳旭)·전광용(全光鏞) 등과는 동학으로서 직장 동료로서 교유가 깊었고 퇴직 후에는 이경선(李慶善)·이강로(李江魯)와 함께 삼우회(三友會)를 만들어 전국의 누정을 답사하여 누정문학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1996년 8월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고 묘지는 경기도 장흥에 있다.

상훈과 추모

한국고전문학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1995년 8월 사재를 출연하여 성산학술상을 제정하였고 1996년 9월 제1회 시상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성산장덕순선생저작집』(박이정출판사, 1995)
『성산장덕순선생정년퇴임기념논총 한국문학사의 쟁점』(성산장덕순선생정년퇴임기념론총간행위원회, 집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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