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화기에 잠시 존속했던 극장.
연원 및 변천
이 극장의 특이한 점은 1909년 4월 청나라의 연희(演戱)를 초청해서 공연을 가진 점이다. 청나라 배우 80여명이 초청되서 공연을 했는데, 안동현(安東縣)에서 가져온 의상이 볼 만했다. 그들의 연희형태는 주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레퍼토리의 경극(京劇)이었다.
이후 이 극장은 청나라 공연으로 분노한 청년들의 경고(警告)와 일본 경시청(警視廳)의 탄압, 당시 경제사정에 따른 관객 감소 등으로 인하여 1909년 11월 초순에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잠시 다시 문을 열고 시대의 추세에 따라 활동사진 상영과 공연활동을 지속하였으나, 1910년 초여름 다시금 경영난 문제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다시 문을 열고 극장을 운영하였는데, 두 번의 휴관 이후 관객이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 극장의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당시 다른 극장들처럼 기존건물을 공연장으로 전환한 것이기 때문에 발전시설(發電施設) 등 내부구조가 허술하였다. 이로 인해 1908년 9월 10일 공연도중에 정전이 되어 표를 반환하는 사건이 있었고, 1909년 4월에는 구경 온 이탈리아영사의 딸이 층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등 사고가 잦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6.2.2)
- 『황성신문(皇城新聞)』(1909.4.18)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1909.4.16)
-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유민영, 태학사, 1998)
- 『한국 희곡사 연표』(민병욱, 1994, 국학자료원)
- 『근대한국공연예술사자료집 Ⅰ』(단국대학교출판부, 1984)
- 『한국극장사』(유민영, 한길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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