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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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도자연유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무관 장윤의 정려각.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태
  • 최종수정 2026년 08월 14일
순천 장윤 정려 전경 미디어 정보

순천 장윤 정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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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무관 장윤의 정려각.

내용

1985년에 전라남도[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동.

장윤의 본관은 목천(木川)으로, 순천 쌍암 학구정(현 승주읍 봉덕리 학구촌)에서 선전관 응익(應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발포만호·훈련원정·사천현감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임계영(任啓英)의 전라좌의병의 부장이 되어 성산과 개령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1593년 6월, 관군은 물론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까지 패해 버린 진주성에 들어가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璡) 등과 함께 최후까지 제2차 진주성전투를 주도하다 순절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순천의 정충사(旌忠祠)와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1649년(인조 27) 정려가 내려져 정려각을 지었고, 1761년(영조 37)과 1896년에 중수하였다. 정려각은 사방 1칸의 맞배집이며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안에는 중수시의 편액이 걸려있다.

참고문헌

  •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8)

  • - 『전라남도지 제30권』(편찬위원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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