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룡(汝龍). 의주 출신. 증군기시정 장후건(張厚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장우익(張羽翼)이고, 아버지는 장한규(張漢奎)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우필(禹弼)의 딸이다.
1735년(영조 11) 정시무과(庭試武科)에 급제, 평안도 변장(邊將)을 거쳐 1746년 수문장으로 있을 때 성실한 직무수행이 왕의 눈에 띄어 훈련원주부로 승진하였다. 1750년황해도 우후(虞候)를 지내고 백마외성(白馬外城)의 축성감을 맡아 대역사를 완수한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가자되었다.
1756년 이후 오위장·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다음 칠곡부사 재임 중 어사로부터 선정보고가 있었고, 임기를 마친 뒤에도 주민들의 간절한 청원으로 연장하여 유임한 일이 있었다. 그 뒤 내금위장·사복시정을 역임하고, 창성부사 겸 방어사로 있을 때 역시 선정이 드러나 뒤에 혜정비(惠政碑)가 세워졌다.
1773년 나이 70에 이르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됨과 아울러 동지중추부사가 제수되었으며, 영조의 신임이 두터워 누차 왕명에 의한 직접적인 승은(陞恩)을 입었다. 그가 죽자 지방수령 재직시에 은혜를 입은 칠곡과 창성의 백성들이 멀리 의주에까지 부의(賻儀)를 보내고 혹은 직접 상가의 일을 분주히 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