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시종원부경 등을 역임한 관료. 순국지사.
이칭
  • 이칭남강거사(南岡居士)
  • 성안(聖安)
  • 일유재(一逌齋)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단발령
  • 본관인동(仁同)
  • 사망 연도1910년(순종 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1년(헌종 7)
  • 출생지전라북도 김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용하 (서울대학교, 사회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0일
장태수 선생 유물 / 영정 미디어 정보

장태수 선생 유물 /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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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시종원부경 등을 역임한 관료. 순국지사.

개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신. 내부협판 장한두(張漢斗)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제수된 뒤 전적 · 선략장군부사과(宣略將軍副司果), 예조정랑 · 사헌부지평 · 정언 ·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867년(고종 4) 양산군수에 임명되어 부국양병에 주력하고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영규(趙英珪)의 제단을 고쳐 제향하였다.

당시의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고 1872년 고종을 수행하여 송도에 다녀왔다. 그 뒤 병조참의 ·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 동부승지 ·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 춘추관수찬관(春秋官修撰官) 등을 지내고, 1894년 동학란 중에 고산현감에 부임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사직하고, 스스로 남강거사(南岡居士)라 하고 은거하였다. 그러나 1904년 이후 다시 관계에 진출하여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 칙임관3등에 임명되었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자 일제의 회유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단식하여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기려수필(騎驢隨筆)』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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