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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인 법원이 구체적인 분쟁사건에 대하여 일정한 절차를 거쳐 종국적(終局的) · 공권적(公權的)으로 내리는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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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법기관인 법원이 구체적인 분쟁사건에 대하여 일정한 절차를 거쳐 종국적(終局的) · 공권적(公權的)으로 내리는 판단.
내용

신분이 보장되고 독립해 활동하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 분쟁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이 끝난 후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국회의 입법활동, 행정부의 행정활동과 구별된다. 재판은 통상 개인 사이의 이해관계의 분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민사재판과 국가의 형벌권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재판으로 크게 구별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행정재판·군사재판·특허재판·조세재판 등 새로운 재판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재판은 입헌주의의 대두와 삼권분립의 확립에 힘입은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독립한 법원의 존재와, 법원의 면전에서 원고와 피고 또는 검사와 피고인의 모습으로 다투는 대립당사자가 재판의 기본조건이다. 재판은 원고 또는 검사의 소제기(訴提起)에 의하여 비로소 진행된다(不告不理의 원칙).

재판은 원칙적으로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법원의 면전에서 구두로 공격방어활동을 하고(구두주의·변론주의), 이에 기초하여 얻은 증거를 가지고 법원은 자유롭게 분쟁사건에 대한 심증을 형성한다(증거재판주의·자유심증주의).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불복하는 경우에는 심급제도(審級制度:국민의 자유와 권리보호에 신중을 기하고 공정하고 정확한 재판을 받기위해 소송당사자나 소송관계인이 같은 사건에 대해 심급을 달리하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에 의하여 상급법원에 그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3심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근대적 재판제도는 1895년 <재판소구성법>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그 이전까지는 전통적인 법체계에 의하여 입법·사법·행정이 구별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재판은 전근대적인 재판이기 때문에 삼권(三權)이 분립되어 있는 오늘의 사법권 행사와 같이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시는 아직 민형사(民刑事)의 구분이 분명하게 되지 않은 때이기 때문에, 현재 모든 쟁송은 민사에 속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때는 형사사건과 더불어 한데 묶어서 반도덕적 내지 반사회적인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재산권의 귀속 내지 신분권에 관한 것도 형사범죄적인 것으로 보았고, 다만 이러한 사건들은 그 범죄성이 경미한 것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사법권이 엄격히 행정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은 어디까지나 행정권이 행사하는 하나의 행정행위로서 풀이되어야 한다.

왕조시대에 있어서는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은 그것이 오늘날의 민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관점에서 일정한 행위와 부작위(不作爲)를 경미한 범죄적인 범주에서 다스렸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행정권력의 한 가닥으로서 사법의 모든 권한도 왕에게 전속되어 있었다.

다만, 왕은 경미한 사건에 한하여 하부관료인 관찰사나 수령에게 위임하였다. 왕이나 관찰사 또는 수령이 재판을 할 때에는 단독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이 재판권을 행사할 적에 사안의 경중에 따라 형조·의금부·사헌부·사간원 등이 거드는 수가 있으나, 최종결정권은 왕에게 전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의 기관들은 하나의 보조기관에 불과하였다.

왕조시대 재판의 특색은 오늘의 소송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확정력(確定力)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단 재판이 선고, 집행된 뒤에도 언제든지 왕은 이것을 취소, 번복할 수 있다.

재판권을 행사하는 목적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데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서는 오히려 한번 집행된 재판을 번복하는 것이 질서유지상 필요하였을 것이다. 왕조시대 재판의 또 하나의 특징은 형사재판절차가 규문주의(糾問主義)에 의하여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즉, 그 형사절차는 일정한 소추권자(訴追權者)인 검사 등의 소추에 의하여 개시, 심리되지 않고, 재판기관인 왕 등의 직권에 의하여 개시, 심리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는 검사가 사법기관에 대하여 형사사건을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은 심리를 개시할 수 없고, 피고인은 변호인을 선임하여 소추기관인 검사와 맞서서 방어하며, 법원은 검사의 소추를 통한 공격과 방어를 듣고 공평한 지위에서 재판을 선고하게 마련이다.

또, 규문주의를 취하였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하에서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규문주의를 취한 서구의 형사절차에서도 고문이 허용되었음은 공통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문은 때때로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는 바람에 엉뚱한 희생자가 생겼었다.

또한, 자백을 증거로 하여 단죄하려는 사고가 얼마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냐 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에 속한다. 고문은 비인도적이요 잔악한 비인간성의 말로이므로 인지가 발달한 오늘에는 형사재판에서 절대로 금지되고 있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7항에서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들로 인권의 신장면에서 얼마나 진보하였는가를 역력히 알 수 있다. 1895년 <재판소구성법> 제정 이후 근대재판제도의 확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1909년 3심제도의 확립을 보았다. 그러나 재판제도는 일제치하에서 그 골격을 갖추었다.

광복 후 <헌법> 및 <법원조직법>의 제정, <형법>·<형사소송법>·<민법>·<민사소송법> 및 그 밖의 입법에 의하여 현대적 의미의 재판제도를 확립하게 되었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변화는 재판제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폭주하는 재판사무를 경감하고 국민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하여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어 일정한 범위에서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의 현행재판제도에 관하여 민사·형사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민사재판(民事裁判)

민사사건에 관하여 법원이 내리는 의사표시이다. 이 재판은 그 다루는 내용에 따라서 판결·결정·명령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사건 자체를 재판할 경우에는 판결로 하고, 판결을 하기 위하여 소송절차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부수, 파생되는 사항을 재판할 경우에는 결정이나 명령의 형식으로 재판한다.

판결은 사건 자체에 대한 재판이므로 당사자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리하여 판결을 할 때에는 되도록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신중한 절차를 밟게 하고 있다. 판결에서 다룰 소송자료는 반드시 변론을 통해서만 제출되게 마련이다.

이처럼 변론을 열도록 한 까닭은, 첫째 공개한 법정에서 당사자나 증인들이 구술로 진술하기 때문에 주위를 의식하여 긴장하게 되고, 따라서 허위 진술을 삼가게 될 가망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구술로 진술되기 때문에 앞뒤가 모순되거나 애매모호한 부분을 즉석에서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당사자 쌍방을 함께 맞서서 관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상대편과 법원을 동시에 감시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론을 거쳐서만 소송자료와 증거자료가 제출된다면 적정한 재판을 보장하는데는 나무랄 데가 없으나, 자칫하면 법원이나 당사자들의 노력과 비용을 많이 들게 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허비하게 된다.

그리하여 실무에서는 모든 소송자료를 소장(訴狀)·답변서·준비서면의 형식으로 서면화하여 그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증인이 서류에 의하여 진술하지 못하고 구술로만 진술하게 되어 있는 것도 변론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고의 주장을 피고가 시인하게 되면 재판은 불필요하게 되므로, 재판이 필요하게 되는 경우는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다투는 경우에 한한다. 이렇게 되면 법원은 입증책임이 있는 당사자로 하여금 그 주장·답변의 사실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가린다.

입증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세운 증거자료와 상대편에서 전자를 반박하기 위하여 세운 증거가 상충될 때 어느 쪽 증거자료를 택할 것인지의 여부는 법관의 자유심증(自由心證)에 의한다. 판결을 하는 첫 단계로서 필요한 것이 이 사실인정의 절차이다.

법관으로 하여금 자유심증권을 남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법관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재판이 보장되려면 훌륭한 법관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하여 확정된 사실에 법령을 적용하여 결론을 끌어내면 판결이 된다.

법령이 애매모호할 경우에도 법관의 슬기로운 양심에 바탕을 둔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법원이 3인 이상의 법관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는 합의를 하여 그 결론을 낸다.

합의는 과반수로 결론을 내는데, 합의에 관한 의견이 3설 이상 분립하여 각각 과반수에 달하지 못하는 때에는 수액에 있어서 과반수에 달하기까지 최다액의 의견 수에 순차 소액의 의견 수를 가하여 그 중 최소액의 의견으로 결론을 내린다. 판결은 선고에 의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민사소송법 제190조).

일단 효력이 생기면 그것을 선고한 법원 자신도 취소하지 못하고, 오직 상소에 의하여 윗 법원만이 변경할 수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재판중 결정·명령으로 재판할 사항은 비교적 경미하기 때문에 변론을 하지 아니하고 재판하는 것이 보통이다. 적정의 이념보다는 신속의 이념에 치중하려는 취지이다.

그리고 이 결정·명령에 속하는 재판은 엄격하게 선고의 방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상당한 방법으로 고지(告知)만 하면 그 효력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재판은 그 성질이 경미하기 때문에 소송의 지휘에 관한 것이면 언제든지 같은 법원이 취소할 수 있다.

1심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2심법원에 항소할 수 있고, 이 항소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최종심인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1981년 3월부터 시행된 특례법에서는 항소심의 재판에 대하여 불복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상고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허가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에 상고는 사실상 그 길이 막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위의 특례법은 하루속히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대법원의 사무를 경감시켜주기 위한 취지라 할지라도 국민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부담없이 대법원의 마지막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판결에는 사건 전체를 마무리짓는 종국판결이 있는가 하면, 종국판결에 이르기 전에 중간의 쟁의에 대하여 우선 정리하는 취지로 하는 중간판결이 있다. 이 중간판결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고, 종국판결에 불복할 경우에만 상소의 대상이 된다.

(2) 형사재판(刑事裁判)

재판으로서의 성격·효과·종류 등에 있어서는 민사재판의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중복된 부분에 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형사재판은 전근대적인 규문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서 당사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은 순수한 제삼자의 지위에서 원고측인 검사의 공격과 피고측인 피고인의 답변을 들어 어느 쪽의 진술이 옳고 그른가를 재판하게 된다.

검사는 강력한 범죄수사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기민한 기동력을 가진 사법경찰관리를 지휘,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를 수립하여 법원에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면 반대측인 피고인은 변호인과 더불어 검사가 제시한 증거에 반대하는 다른 증거들을 제출하여야 한다.

법관이 재판하는 데 가장 고민하는 것은 이처럼 서로 상충되는 증거들을 어떻게 수용하며, 어떻게 객관적인 진실에 부합되는 사실을 인정하느냐이다.

검사는 피고인이 살인한 증거들을 제출하였는데 피고인은 그것을 극력히 부인하면서 그렇지 않음을 밑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출하였을 때, 재판하는 법관으로서 살인한 사실을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중대한 결단이 요구되는가를 알 수 있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게 되어 있으므로 수사기관에서는 자칫하면 왕조시대와 같이 고문·폭행·협박, 부당한 신체구속의 장기화 등으로 자백을 받아내어 이것을 증거로 제출하려 한다. 자백을 얻기 위한 위의 방법들은 우리의 인권을 유린하는 비인도적인 방법이므로 문명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형사재판에서는 위와 같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게 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이 되는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것을 유죄의 증거로 삼지 못하게 한다.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따른다. 이 점도 민사재판에 있어서의 자유심증주의와 같다.

형사재판을 담당한 법원이 법관 3인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는 민사재판의 경우와 같이 결론을 내기 위하여 합의를 한다.

이 경우에도 과반수로 결론을 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합의에 관한 의견이 3설 이상 나뉘어서 각각 과반수에 이르지 못한 때에는 과반수에 달하기까지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한 의견의 수에 순차적으로 유리한 의견을 가하여 그 중 가장 유리한 의견을 결론으로 한다.

형의 선고를 하는 형사판결에는 그 판결이유에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하여야 한다. 범죄될 사실이라 함은 범죄를 규정하고 있는 각 형벌법규에 규정된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말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요지와, 위와 같은 사실에 어떠한 법령을 적용하였기에 주문(主文)에 적은 바와 같은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밝혀야 한다. 형을 선고하는 판결에서 이러한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법관의 자의적인 전단을 막고 그것이 공정한 것임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형사판결서를 검토한 끝에 피고인이나 검사는 상급법원에 상소할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 판단을 하게 된다. 한편, 유죄의 형사판결에 대하여 이와 같이 엄격한 기재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형사재판제도의 연구』(서일교, 한국법령편찬회, 1968)
『형사소송법』(신현주, 박영사, 1980)
『민사소송법』(이시윤, 박영사, 1982)
집필자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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