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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중에서 소비되지 않고 생산 활동의 밑천이 되는 나머지 자산. 경제용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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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소득 중에서 소비되지 않고 생산 활동의 밑천이 되는 나머지 자산. 경제용어.
내용

저축은 형성과정에 따라 자발적 저축과 강제적 저축으로 구분된다. 자발적 저축은 경제 주체의 자발적 또는 준자발적 의사로 이루어진 저축을 말한다. 강제적 저축은 조세징수나 물가상승으로 인해 경제 주체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이루어지는 소비절약 부분을 말한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생산 주체인 기업의 수익이 되어 경제의 순환 및 성장에 영향을 주며, 저축은 투자의 원천으로서 국민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그러나 골동품 구입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는 자산의 보전은 소유권 변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는 국민경제 계산에 변화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개인적인 저축을 목적으로 현금을 그대로 금고 등에 보관할 때 이것 역시 생산·소비의 경제 순환과정에서 이탈한 부분이기 때문에 저축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투기 목적의 소득지출이나 현금 형태의 자산 보유 등을 자금의 퇴장 또는 은닉이라고 하며, 이러한 현상이 지나치면 경제 순환과정에서 누출되는 소득 부분이 많아지게 되어 그만큼 국민경제 성장을 잠식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 가계 및 개인의 중요 저축 형태의 하나인 사채도 역시 국민경제 관점에서는 자금의 퇴장에 속한다. 이는 흔히 지하경제라고 불리는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공식 집계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그 규모나 생산경제에 대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사채는 투기행위나 현금 형태의 자산 보유와는 달리 생산경제에 기여하는 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기업이 사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또 사채는 긴급한 자금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을 도와주는 윤활유 구실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사채는 저축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채는 높은 이자 부담으로 순조로운 산업자본의 축적을 저해하며, 지하경제의 생리 때문에 마지막에는 산업자본이 되지 않고 사채시장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강한 회귀성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생산과정에서 창출된 가치가 사채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제도금융의 법정금리가 지나치게 낮아 사채의 수익성이 현저히 높을 때에는 반대로 사채시장이 산업자본을 흡수해 가는 경향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초반기에 많은 물의를 빚었던 기업의 위장 사채가 그 좋은 예이다.

사채는 생산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기여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업자본의 축적을 잠식하기 때문에 자금의 퇴장으로 분류되어 저축 개념에서 제외된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저축을 개인저축, 기업의 영업이윤 및 감가상각준비금 등에 의하여 공급되는 저축을 기업저축 또는 법인저축, 그리고 정부 수익에서 정부 지출을 차감한 잔액을 정부저축이라고 한다. 이 3주체에 의하여 형성된 저축의 합계가 국민저축이며, 해외에서 유입 또는 도입되는 저축이 해외저축이다.

전통시대에도 소득의 일부는 소비하고 나머지는 재생산활동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료 부족과 연구 미흡으로 인해 저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광복 직후에는 사회 혼란과 물가상승이 극심했고, 국민소득도 절대적으로 적어 국민저축을 통한 자본 조달이 어려웠으므로 해외 원조와 외채에 의존하여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였다.

1950년대에는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고 원조가 줄어듦에 따라 국민저축을 증대하기 위해 ‘국민저축요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다. 1952년 3월에는 국민저축운동추진 중앙위원회와 각 지방위원회의 지도 아래 각종 국민저축조합을 결성하였다.

1953년 11월부터 1958년 말까지는 복채저금(福債貯金)을 금융기관 공동으로 모집했고, 1959년부터 각종 저축예금을 은행별로 운영하였다. 또한, 1952년 이후 「소득세법」 등 각종 법령을 개선하여 저축예금을 우대하는 조처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1962년 6월에 단행된 제2차 통화개혁, 1965년 9월 금리 현실화 조처와, 각종 금융제도를 개선하여 자발적인 민간저축과 강제저축을 병행하기 위한 조처도 마련하였다. 특히, 1962년 2월에 제정된 「국민저축조합법」에 따라 직장·단체와 지역별로 국민저축조합을 결성하여 매월 일정액 이상을 저축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을 제정, 저축추진 중앙위원회 조직이 확대되고 활동이 활성화됨으로써 저축을 증대하고 조성된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1976년 4월부터는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제도를 실시하여 중산층 이하 근로소득자들의 저축증대를 도모하였으며, 1977년 4월 가계당좌예금제도가 신설됨에 따라 신용거래의 기반을 조성하고 저축의 증대를 꾀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까지는 각종 법률과 제도를 통한 저축증대 조처가 효과가 없음에 따라 1980년대에는 민간 주도의 자발적인 저축증대를 꾀하였다.

경제개발계획 기간 초기에는 국민저축이 매우 적어 투자재원의 절반 이상을 해외저축에 의존하였다. 제1차 계획기간인 1962∼1966년의 총투자에 대한 해외저축 의존도는 54.3%였다. 국민저축 분야의 경제 주체별 저축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드러나는 특징은 상대적으로 정부저축률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1962∼1966년의 국민저축의 구성을 보면, 정부저축 15.0%, 법인저축 48.7%, 개인저축 36.3%였는데, 1967∼1969년에는 정부저축이 40.2%로 늘어난 반면 법인저축은 32.1%, 개인저축은 27.7%로 떨어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법인저축률이 정부저축률을 웃도는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정부저축률이 평균 30% 이상을 차지하여 여전히 높은 비율을 유지해 왔다. 고도성장기의 부족한 투자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저축 동원에 주도적 임무를 담당해 온 사실을 설명해 주는 자료이다.

1962년 이후 고도성장기에는 활발한 개발투자로 인하여 저축에 대한 수요가 그 공급을 크게 초과하였고, 높은 정부저축률로도 그 자금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이용한 강제저축의 방법이 중요한 자본 동원 수단으로 채택되었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해 온 개발도상 국가들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저축을 기업의 개인적인 이윤의 재투자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그 위에 국민 담세능력의 한계, 저금리정책으로 인한 금융기구의 왜곡, 저소득 등 저축증대를 가로막는 악조건들을 많이 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운 의욕적인 경제개발계획은 저축의 공급을 항상 부족하게 했고, 그 부족을 메꾸기 위해 유동성의 과잉공급 방법이 이용되어 온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진행을 통한 강제저축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재산 및 소득의 재분배효과와 산출효과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실물자산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한편, 금융자산의 실질가치를 감소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채무자에게는 채무의 실질 부담을 격감시켜 주고, 채권자에게는 채권액의 실질가치를 하락시킨다.

기업은 실물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동시에 많은 부채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진행은 기업 보유의 실물자산 가치를 증대시키며, 또 부채 경감효과를 통해 채권자의 소득을 채무기업으로 이전시킨다.

이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재산소득의 한계저축률은 노동소득보다 5∼10배가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소득 재분배기능을 통해 저축 증대에 기여하기도 한다.

1962년 이후 고도성장기에 동원되었던 우리나라 국내 저축의 주요 원천은 정부저축과 인플레이션을 통한 강제저축이었다. 그런데 정부저축은 경제효율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조세부담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정부저축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는 없다.

인플레이션에 의한 강제저축의 동원에도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인플레이션 진행과정에서 축적된 저축은 투기성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생산적인 데 투자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이 높고 그 속도가 급속하면 투기를 자극하게 되어 오히려 생산자금을 투기자금으로 유출시켜 자금 배분을 왜곡시킨다는 사실이 개발도상국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또, 이는 분배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폐단도 낳는다.

1965년 이후 저축의 추이는 민간 부문의 저축률이 꾸준하게 증가되었다. 정부 부문의 저축률은 변화가 적으며, 국민저축에 비하여 해외저축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건전한 국민저축의 증대를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가계의 여유자금을 금융기관으로 유치, 흡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전한 소비생활 태도와 가계의 합리적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금리의 현실화이다. 제도금융의 법정금리는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대단히 낮게 유치되어 온 반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실질금리는 부(負, 마이너스)의 값을 나타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1965년도에는 최고 예금금리를 연 15%에서 대출금리를 훨씬 웃도는 30%로 끌어 올린 역금리제도를 실시했고, 이 조처는 많은 시중의 여유자금을 금융기관으로 유치하였다.

그러나 은행의 적자경영 등 이로 인한 폐단이 많아 1968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예금금리를 인하하였다. 그러자 은행저축이 사채시장으로 빠져나가 이것이 높은 이자로 기업 등에 공급되었고, 많은 기업이 무거운 사채금리에 억눌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1972년 8월 8·3조치를 단행하여 사채를 동결시켜 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였다.

이처럼 건전한 국민저축의 동원을 위해서는 금리의 현실화가 필요하지만, 이로 인한 고금리는 기업의 이자 부담을 늘려 국제 경제력을 약화시키는 등의 문제점을 일으키기 때문에 금리 현실화의 실현이 저지되고 있다.

은행 민영화 움직임이나, 단자회사 및 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의 발달 등은 금리자율화를 예고해 주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저축액은 1970년에 5,069억 원, 1980년에 8조 7025억 원에서 1988년에는 4조 1325억 원으로 증가하였다.

국민저축률이 1990년도에 37.5% 포인트에 달하던 것이 1999년 6월 현재 30.6% 포인트까지 하락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민간저축인 가계가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줄인 탓에, 한국의 국민총저축률이 계속해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국민총저축률 하락은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데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88년 39.3%까지 상승했던 국민저축률은 이후 소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앞지르면서 완만하게 하락세를 지속해 오고 있다. 1990년 37.5%에서 1995년에는 35.5%로 떨어졌고, 1997년 33.4%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1999년 6월 현재 소득은 0.8%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소비지출은 5.6% 증가했다.

이와 같은 민간저축 부진이 국민총저축률 하락을 초래했고, 국민총저축에서 정부저축은 1998년에 비해 1999년에는 0.8% 상승했으며 민간 저축은 3.9%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계층별로 보면 중·저소득 가계저축이 각각 31.0%, 219.5% 감소해 1998년보다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 고소득층의 경우 1998년에는 저축을 늘렸으나 1999년에 들어서서는 20.0%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후 나타났던 절약형태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데, 최근 들어 소비 확장세가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저축성향이 높은 고소득층에서 소비증가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되었다.

참고문헌

『저축총람』(한국은행, 1983)
『경제발전과 금융산업』(한국투자금융주식회사, 1981)
『한국의 민간저축에 관한 연구』(이현재 외,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1979)
『한국가계의 저축행태』(한국개발연구원, 1975)
『저축과 성장』(한국은행, 1969)
「개발도상국의 인플레와 저축동원」(정동현, 『부산대학교논문집』 21,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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